구증구포
구증이란 아홉 번을 찐다는 것이며, 구포란 아홉 번을 말린다는 것이다. 차를 마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구증구포에 대해서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또한 전통 수제차라고 불리는 차들의 포장 용기에도 구증구포라는 단어는 쉽게 찾을 수 있다. 구증구포는 원래 한약 제조법으로 한방에서는 포제법이라고도 부른다.
이 제조법은 당나라 때 ‘산수본초’와 ‘식료본초’란 책에서 처음으로 거론되었으며 지금까지 사용되어 왔다. 찐다고 하는 증은 불로 물을 끓여서 증기를 내어 약물을 익히는 것으로 물과 불은 만물의 생명을 낳고 길러주는데 중요한 두 요소이다.
대우주를 보면 태양은 불에 속하고 달은 물에 속한다. 인간이 해와 달의 빛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물과 불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햇볕에 말리는 포는 푹 찐 약물 속에 들어있는 수분을 모두 제거하고 난 성분만을 가진 약물 농축과정이다. 아홉 번을 찌고 말린다는 9라는 숫자는 동양철학인 주역 상수철학 기본수에 있어서 가장 큰 숫자이다.
전통 수제차중 산차를 만들 때 우리나라 특성에 맞게 솥에서 덖어서 만드는 방법이란 ‘본초학’의 초법에 의한 것이다. 초의 목적은 치료 효과를 높이고 약성을 누그뜨리고 개선하여 주며 독성과 자극성을 감소시키고 향과 미를 잡아 교취교미하여 준다.
초법에서 찌는 것은 덖음으로 대처하고 햇볕에서 말리는 작업은 솥에서 수분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대처하였다. 십오년 이상 차를 덖어왔던 구증구포의 수제차는 색은 맑고 향은 온화하며 맛은 부드럽고 감미롭다. 입 속에 처음 차를 머금었을 때 그윽한 향이 입안 가득히 퍼져온다. 마시고 난 후에도 침샘에서 맑은 이슬을 머금고 있는 듯한 향기로운 차의 느낌을 알게 해준다. 물론 세 번이나 일곱 번 정도 덖는다고 해서 차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거짓이 없는 차는 반드시 찻잎을 아홉 번을 덖어야만 비로소 제 맛을 우려내 준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구증구포라 하면 ‘아홉 번 덖고 아홉 번을 비빈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비빈다는 것은 유념이라 한다.
그렇다면 유념에 대해서 잠깐 알아보기로 하자. 유념은 찻잎 표면에 있는 얆은 막과 세포조직을 파괴하고 찻잎 속에 들어있는 수용성 물질을 표면으로 이동시켜 준다. 또한 성분의 변화를 도와 주고 더운 물과 차가 만났을 때 차의 성분이 잘 우러나게 하여 준다.
사람들은 차를 마시고 난 후 찻잎의 형태에 대해서 온전하게 유지되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유념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차의 색과 향과 맛을 살릴 수가 없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소리들이다. 유념의 빈도는 정해져 있는게 아니다. 찻잎이 작으면 유념을 한 번에서 두 번정도 하고, 찻잎이 크면 세 번 정도 유념해주면 된다.
혹자는 찻잎을 너무 세게 비비면 차색이 탁해진다고 하는데 그것또한 차색이 탁해지는 원인을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차를 3번째 덖다 보면 찻잎에서 올라오는 미세한 분말을 볼 수가 있다.
덖음의 빈도가 높을수록 많은 양의 분말이 올라오는데 차색이 탁한이유는 바로 아홉 번의 덖음을 채우지 않았고 미세한 분말들을 완전하게 제거되지 아니한 까닦이다. 그러나 아홉 번을 정확하게 덖어내면 탁한 차 색 대신 맑은 탕색을 얻을 수 있다.
자! 지금부터 차를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쉽게 설명해보려고 한다.
우선 좋은 차를 만들려면 맑은 날 새벽에 이슬을 머금고 있는 찻잎을 오전에 첫 덖음을 해주어야 한다. 차를 덖을 때 차가 가지고 있는 수분만으로 완전한 첫 덖음이 되기는 어렵다. 이슬을 머금고 있는 찻잎은 차 자체의 수분과 잘 어우러져 첫 덖음을 완벽하게 해주어야할 만큼 차에 있어서 첫 덖음이 중요함은 찻잎의 맛과 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차가 설익으면 비린 맛과 풋 냄새가 나고 태워 버리면, 탄 냄새가 찻잎 전체에 스며들어 마실수가 없다. 처음으로 차를 만들어보는 사람들은 1Kg 정도, 숙련된 사람들은 3kg 정도의 두꺼운 솥에서부터 시작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솥은 될 수 있는대로 잡냄새가 없는 것이 좋다. 찻잎을 넣는 알맞은 시점은 온도가 250℃에서 300℃ 정도로 솥이 완전하게 달아올라 물방울을 떨어뜨렸을 때 기름처럼 방울이 생기면 된다.
이때 달구어진 솥은 매우 뜨거우니 조심하여야 한다. 생잎이 솥에 들어가면 풋풋한 찻잎 향기가 올라오고 3분 정도 지나면 선명한 녹색을 지닌 생잎은 시들해지기 시작한다. 5분 정도 지나면 비린 맛과 풋 내음이 사라지면서 완숙한 차의 익은 향기가 올라오는데 이 때 약 2분 정도 찻잎을 한데 모아주고 꺼낸다.
꺼낸 찻잎은 멍석이나 키 위에 올려놓고 비벼야 한다. 만약에 이것들이 준비되어 있지 않을 시에는 깨끗하게 삶은 광목 위에 올려놓고 비벼야 한다. 만약에 이것들이 준비되어 있지 않을 시에는 깨끗하게 삶은 광목 위에 올려놓고 비벼도 상관은 없지만 잡냄새가 배어 있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냄새에 민감한 찻잎은 모든 냄새를 흡수해 버리기 때문이다. 이 점은 반드시 유의해야 할 사항이다.
유념을 할 때는 잘 비벼야 하는데 손바닥과 손가락을 이용하여 돌리듯 말아주고 찻잎에서 진액이 빠져 나올 때까지 고루고루 비벼준 다음 양 손가락을 이용하여 찻잎을 한 잎, 한 잎 잘 털어주고 식혀준다. 이것이 첫 번째 덖음이다. 유념할 때 장갑을 끼어서는 안되는데, 만든 이의 기와 정성이 찻잎으로 스며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때 손은 반드시 청결(비누로 손을 씻거나 화장을 하면 안된다.) 하여야 한다.
두 번째 덖음은 첫 번째 덖음과는 달리 온도를 150℃정도로 낮춘 솥에 찻잎을 고루고루 편다음 뭉치지 않게 털면서 덖어준다. 두 번째로 올라오는 차향이 첫 번째와는 다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찻잎이 솥에 들어가는 순간 연한 쑥향이 되어 올라오는데 10분 정도 덖은 다음 꺼내어 다시 유념한다. 이 때 어린 찻잎일 경우에는 부드럽게 유념하고 거친 찻잎일 때에는 세게 비벼준다.
첫 번째 유념과 같이 잘 비비고 잘 털어서 뭉쳐진 찻잎이 없도록 하여야 하며 식은 찻잎은 세 번째 덖음을 할 솥에 넣는다. 온도는 100℃정도로 낮추어 주고 솥 안에서도 뭉치지 않게 한 잎 한 잎 털어준다. 3분에서 4분 정도 덖다가 다시 꺼내어 연한 찻잎은 그대로 식혀주고 거친 찻잎은 한번 더 유념 해준다.
네 번째 솥의 온도는 90℃정도로 낮추어 찻잎을 넣는다. 이 때 찻잎의 표면에 수분은 증발된 것처럼 보이지만 솥 안에 들어간 순간 수증기가 올라오면서 찻잎은 다시 촉촉해진다. 3,4분이 지나면 미세한 솜털 같은 분말들이 올아오는데 5분 정도 덖은 다음 다시 꺼내어 깨끗한 천이나 종이를 깔고 완전하게 식혀준다.
다섯 번째의 솥의 온도는 80℃정도로 낮추어 다시 솥에 넣고 덖어준다. 이때 중요한 것은 찻잎 하나하나가 솥 표면에 닿는다는 것으로 열과 찻잎이 서로 만나 찻잎 속에 남아 있는 수분을 제거 하면서 색, 향, 미를 발산하여 준다. 5분에서 7분정도 덖은 다음 꺼내어 식혀준다.
여섯 번째 솥의 온도는 70℃정도 낮춰 준다. 같은 방법으로 덖어주면서 차향이 사라졌다 다시 올라 오는 때를 맞추어 꺼낸다. 일곱 번째 솥의 온도는 60℃정도에서 10분 정도 충분히 덖어 준다. 이 때 올라오는 차향은 공간을 메우기에 충분할 만큼 많은 향을 발산시킨다. 다시 꺼내어 식혀준다.
여덟 번째 솥의 온도는 50℃정도에서 7분 정도 덖어 주다가 완전한 쑥향과 난향이 올라오기 시작할 때 멈추고 꺼낸다. 마지막으로 아홉 번째는 24시간이 지난 후에 덖어 주는 것이 가장 좋다. 차는 생엽으로 되돌아가고 싶어 하는 회귀성 본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최소한 24시간이 지난 후 덖어 주는게 좋다는 것이다.
마지막 덖음은 맑은 날을 택하여 50℃정도에서 20분 정도 덖어 준다. 이 때는 덖는다는 개념보다는 볶는다는 개념이 맞을 것이다. 수분이 0.3% 정도밖에 남지 않으면 차의 상태는 반듯하게 차분해져 있다. 차향은 진향, 난향, 쑥향이 한데 어우러져 올라 왔을 때 멈추고 꺼낸다. 간혹 봄에 덖은 다음 보관해 두었다가 초가을에 마무리하는 경우도 있지만 경험에 의하면 봄에 수분을 충분히 제거하여 아홉 번 덖어서 보관한 차의 색, 향, 미가 가장 뛰어났다.
봄에 정성 들여 만든 차는 가을이면 숙성된 차향을 준다. 하지만 보관해 두었다가 가을에 마무리 작업을 한다면 구증구포의 제 맛고 향을 내지는 못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차를 만드는 방법에 마치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현혹하기도 한다. 그러나 제다의 비법은 따로 있는게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의 끝없는 경험과 자기 자신을 향한 수행이다. 요즘에는 백로차라 하여 추차도 많이 만든다. 봄 차가 가을에 숙성된 차 맛을 보여준다면 가을차(제다를 잘하면 강한 맛은 부드러운 맛으로 바꿀 수 있다)의 특징은 봄 차보다 쓰고 떫은 맛은 강할지라도 햇차라는 맛을 느낄 수 있게 하여 좋다.
지금까지 차를 만들어 오면서 그것들과 무수한 대화를 해왔다. 차는 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해주는 그림이었고, 나는 차가 그려내는 맛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처음 차를 만들 때부터 지금까지 구증구포를 하지 않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어떤 때는 너무 힘이 들어 덖는 횟수를 줄여보려고도 하였지만 문제는 차의 본성인 맑음 그 자체의 맛이 나오지 않았다. 아홉 번을 넘어 열두 번까지도 덖은 적이 있었는데 그럴 때는 기후가 좋지 않았거나 시간과 온도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였거나 내 마음과 차가 일치 되지 못하였을 때이다. 이 때에는 구증구포의 맛과 유사했지만 색과 향은 그렇지 못했다.
덖음 차만이 우리의 전통차라고 말하는 이가 더러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삼국시대에는 삶아서 마시는 탕차가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말차(쪄서 돈 모양의 단차, 마실 때 구워서 멧돌에 갈아 가루로 마심), 조선시대에는 덖음차(전차)가 있었다. 우리나라는 발효하지 않은 불발효차와 발효차, 반발효차 세 가지 종류가 모두 존재하였다. 그중 덖음 차는 불발효차에 속하지만 차를 만들어보면 10%정도 미세한 발효가 진행 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조선시대부터 음용 되었던 덖음차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보림사 대밭에서 난 차를 절의 승려에게 구증구포의 방법으로 가르쳐 만들게 하였더니 그 품질은 보이차 못지 않았다’고 하는 이 기록은 동국대 사학과 김상현 교수께서 발췌하여 일러 주셨는데 나에게는 가슴 벅찬 내용이었다.
혹자는 구증구포는 약재를 만들 때나 사용하는 것이지 차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풀을 약으로 만들었을 때 사용했다는 구증구포는 차를 만들면서 체득 되어졌다는 사실에 대해서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나는 차를 만들 때마다 음다하는 모든 사람들의 심신이 건강하게 해달라고 차신에게 기도한다. 선인들 또한 이런 마음으로 구증구포를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차를 마시기에는 구증구포의 차는 턱없이 부족하다. 봄철 내내 만들어도 오백 통 이상 만들기 힘들다. 내가 차를 만들어야겠다고 고 한상훈 선생님께 처음으로 말씀드렸을 때 “오백 통 이상은 차가 아니여.”라고 하신 그 말씀이 해를 거듭할수록 가슴 속에 와 닿는다, 구증구포의 차가 혼자의 힘으로는 역량부족이라 많은 양의 차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선생님께서는 그때에도 이미 알고 계셨던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 경험으로도 500통이상의 차가 만들어질 때는 이미 내 손을 떠나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야 했다.
항간에는 구증구포도 아니고, 수제도 아닌 차가 비싼 가격으로 다인들에게 판매되고 있다. 눈속임으로 이름만 달고 있는 어설픈 수제차보다는 위생적이고 과학적인 기계차가 가격면이나 내용 면에 있어서 실속 있고 차를 즐기는 다인들에게도 훨씬 더 경제적이고 이롭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차를 만드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만든 차가 세상에서 최고라는 편파적인 성향에 물들어져 있다. 차에 대한 거짓 없는 마음 때문일까, 아니면 자기만의 도취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자만심 때문일까? 차 문화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소속 되어진 단체의 행다예법만이 전통적이고 우수하다는 부질없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의 행다는 단지 차를 마실 때 필요한 행위일 뿐이다.
우리의 독특한 차 문화를 일관성 있게 체계화 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걸 명심해야하고 차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나 차를 제다하는 분들 모두 일심으로 정진해야 할 것이다. 정확한 근거와 시대상에 따른 차의 종류도 구분하지 못하면서 다맥을 운운하며 본인이 맥을 계승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일들도 있는데 이것은 사심에서 나오는 그릇된 오류일 뿐이다.
진정한 차인이라면, 차를 제다할 줄 알아야 한다. 차를 제대로 만들어 보지 못하고 차 맛도 구분해 내지 못하면서 단치 ‘차인 입네’ 하며 이 어려운 시국에 비싼 달러를 짊어지고 앞 다투어 외국으로 나가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일 뿐이다.
그곳에서 행다시연을 연출했다고 해서 진정한 차인으로서 자리 매김을 했다고 누가 인정해주겠는가. 지금 우린 또 다시 그 나라의 문화 속국이 되고 싶은 것은 아니F까? 우리의 문화를 제대로 연구하여 그들을 우리에게 오게 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들에게 보여주는 것 만으로 급급해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실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그만 해야 한다. 모두가 힘을 합쳐 우리의 찬란한 차 문화를 위해 연구하고 복원하여 계승․발전 시켜야 하는 것이 우리의 차를 사랑하고 있는 모든 다인들의 몫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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